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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가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Isn't that your prayers for th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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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는 자의 복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2:20-21)
“어머니중보기도자의 지침은 자신을 씻는 것”
Diaspora.s Mother Intercessory Prayer Meeting
 
중복기도자란 !


중보기도자는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자신을 씻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중보자적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 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라 함은 자신이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중보기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중보기도자로 부름받지 않았다면 중보기도자가 될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교회 되게 가정을 가정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자가 중보기도자이므로 끊임없이 교회와 가정과 나라를 위해 사무엘처럼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사명자가 중보기도자인 것입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의 뜻을 세우고자 하는 자는 충분한 훈련속에 말씀의 인도를 받는자가 되어야 곧 중보기도자로 사역을 시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자는 풍성한 영적 지략이 있어야 합니다.
한나처럼 충분한 주의 손길이 있어야 중보기도자로서 부르심에 합당한자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렇게 부름받는 자는 그 부르심에 증거가 있습니다.
부르심의 증거가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중보기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유는 중보기도자가 중언 부언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분명한 회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소명은 분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중보 기도자로 부르실 때는 어느 날인가 부터중심에서 울어나는 기도의 초점이 중보적 기도로 옮겨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초기 단계로서 성실하게 중보기도에 임하다보면 보다 큰 은혜를 받아 명확한 사명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중보 기도자로 세우시려고 훈련되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합니다.

특히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은자는 더욱 성실한 교육을 하게 됨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숙한 지도자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지도자는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서서히 체험을 쌓아가며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훈련되도록 몰아가시다가 훈련의 강도가 높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게 합니다.

이렇게 중보기도자로 빚어 가는 것은 오직 기도와 말씀의 훈련 뿐이므로 이 훈련은 통하여 영적 확장을 먼저 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됩니다. 결국 중보기도자로서의 훈련은 자신이 자신과 싸울 수 없음으로 친히 하나님께서 가지 치기를 할 수 있도록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 이심을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중보기도자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이런 훈련에 잘 순응할 때 비로서 중보 기도자적 사명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두 이런 훈련을 거친 사람들입니다. 그중 얍복 강에서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것은 영적 시간의 훈련입니다. 이 시간은 내 중심의 자아가 21년 동안 라반의 집에서 깨어지지 아니하니 천사는 야곱의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야곱을 얍복강에서 깨우친 것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환도뼈가 부러지는 시간이 있어야 하나님을 절대자로 섬기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야곱은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곧 야곱은 이 훈련의 과정을 통과 하였기에 이스라엘나라를 세우는 약전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환도뼈가 부러지는 영적 씨름은 말씀과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그저 독서하며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자기의 살이 되고 뼈가 되도록 자기속에 있는 교만과 삐뚤어진 신앙자세가 바로 되기 까지 산산이 부서진 자기 자아가 자기몸에서 떨어지고 합당한 고운 가루가 되어 중보기도 사역자로 변하기 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훈육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영적 리더십의 사역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단의 과정은 놀랍고 기이한 것입니다.

이것을 체득할 때까지 중보 기도자로 부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신을 내어 맏기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결국 그 순종은 영적 파수꾼으로 교회와 개인과 나라와 민족의 영적 불쏘시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된 중보기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하나님앞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중언 부언하지 않고 똑바로 하는 것입니다.

여기쯤에서 저자는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부언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이유는 한국어머니중보기도회는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부 신학자들이 교계적으로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하여 합심기도 아니면 협력기도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또한 적절한 말은 아닙니다. 이유는 합심기도 협력기도는 이미 주께서 육체를 가지고 계실 때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다.

(마18:19-20)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하시기 때문에 오늘날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자신을 살피고 중보기도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성령님이 되셔서 합심기도의 결과를(행2:1-3)에서 볼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 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의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 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 이렇게 바울은 성령을 받은 자들의 합심기도에 대한 결과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육으로 계실때와 영으로 계실때에 합심기도와 그 열매를 주신 것은 성령께서 처음 나타 나실 때로부터 현제까지 이 합심기도는 유효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이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중보기도는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의 중보기도라 함은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것이므로 구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자에 대하여 깊이 설명 해 주었습니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연약한자의 기도는 성령을 따라 가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탄식함으로 간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이 되신 주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우리의 빌바를 가르치시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자의 기도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므로 중보기도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회에서 중보기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중보기도 사역에 거리낌이 없어야 합니다. 다시 언급 하자면. 오늘날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 할 수 없다는 일부 신학자들의 의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한 권위를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하시는 분 역시
그리스도께 충성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주님과 관계되는 단어 사용에 대하여 신중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중보기도자는 더욱 신중하게 자신을 살피고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본래 중보라는 단어는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기 때문에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갈3:19) 하시므로 주께서 오셔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빌바를 알게 되었으니 그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거스리지 아니하고 주의 것을 믿음으로 받am면 버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중보라는 단어는 오직 하나를 가리키기 위한 개념적 단어 입니다. 하여 구약 여호와 하나님은 죄를 범법하는 자들을 위하여 율법을 세우시고 그 율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도 죄인 된 주의 백성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반드시 자신의 죄를 버리고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중보자적 기도를 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중보기도 사역은 사명적 기도인 것을 크게 인식하고 기도함이 옳습니다. 결국 중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육적 기도를 중보사역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것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육신의 것을 구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중보기도자는 주의 뜻에 부끄럽지 말아야 할것입니다.

바울은 사역의 본질을 알고 생명을 위한 중보사역을 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되 먼저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신 사도였습니다.(딤전2: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권세잡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즉 권세잡은자가 하나님을 믿는자면 주의 뜻에 부합하도록 기도해 주면 됩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가 권세를 잡았으면 그가 권세를 남용하지 않도록 기도해 주어야 백성이 가는 길이 순탄하기 때문에 권세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엡6:18-19)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 하라 하여 예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라하라는 것입니다.(마6:33)

결국 바울같이 성령을 받고 빛으로 인도받은 자는 반드시 중보자적 기도를 할수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하여 오늘날 어머니중보기도자 역시도 성령을 받지 아니한자는 중보사역을 할 수 없음으로 어머니중보기도자는 반드시 성령을 받은자의 기도가 되어야 주의 오른손의 권능이 나타는 것임을 알고 먼저 자신이 성령을 받은 자인지를 스스로 자단하여 돌아보는 자가 되어 부끄럽지 않는 기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어머니중보기도자는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행19: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는 그 물음에 분명한 답을 하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성령받은 자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중보기도자는 사명적 중보기도자로서 부끄럽지 않는 신조가 있어야 합니다.    
 
(2)중보기도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신실한 에스겔 같은 중보기도자를 찾고 계십니다. 에스겔선지자는 말합니다. (겔22:30-31)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31)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보기도자는 무너진 대를 막아서는 자라고 하십니다. 성이 무너졌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분쟁하고, 다툼으로 죄가 있는 곳을 무너진 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 하실때에 죄가 차면 심판하시는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창6: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그러므로 세상을 심판하기에 앞서 노아에게 방주를 예비하라 하신 것입니다. (창15:16) 이스라엘백성이 4대만에 출애굽하는 것은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으로 출애굽의 시기를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뜻을 아브라함에게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분노를 막을 자를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분노를 쏟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대하7:14)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고침받는 것을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보는 자로서 때를 알고 믿는자를 기도로 돕는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언급하되 (시106: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였도다 결국 중보기도자가 해야 할 것은 무너진 곳을 보고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자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사명의 사람입니다.

소돔성을 멸하실 때에 중보기도자적 사명을 감당한 아브라함을 묵상해 봅니다(창18:22-32)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떠나서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여호와 앞에 섰더니 서 있었다.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겠나이까 ?라고 합니다.

또 그 성 중에 의인이 오십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의인 오십을 인하여 용서치 아니 하시리이까 ?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을 불가 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의인 오십중에 오신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히여 온성을 멸하시나이까 ?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소돔고모라는 의인 한명이 없어서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앞 가까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자리에 서 있는 중보기도자는 아브라함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살리기 위한 중재적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의 사역은 하나님의 진노를 막는자의 자리에 있는 것이므로 오늘날 중보기도자라는 단어를 쉽게 아무에게나 적용하여 할수 있는 단어는 아닙니다.(시106:23)

모세도 주 앞에 나아가 그 갈라진 틈에 서서 파멸의 분노를 거두어 들이시게 한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오늘날의 중보기도자 역시 모세와 아브라함 같은 중보자적 기도를 할 수 있는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봅니다(신9:25-29)

25그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 26여호와께 간구하여 가로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위엄으로 속하시고 강한 손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모세는 40주야를 여호와 앞에 얻드려 기업된 백성을 멸하지 마시라고 중보저적 기도한 이 모습에서 오늘날 중보기도자라고 말하는 자는 부끄럽지 않는 기도를 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7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 백성의 강퍅과 악과 죄를 보지 마옵소서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생각하사 이스라엘백성을 악한 죄를 보지마시라고 애원합니다, 이모습에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므로 증보기도자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뿐입니다.

28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신 그 땅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허락하신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드릴 능력도 없고 그들을 미워 하사 광야에서 죽이려고 인도하여 내셨다 할까 두려워하나이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을 심판 하시면 하나님의 이름이 더러워 질까도 염려하며 기도한 모세를 우리는 얼마나 닮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보기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보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9그들은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이로소이다 하였었노라 모세는 주의 기업된 백성을 출애굽시킨 것은 그들이 주의 기업이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모세의 기도속에 오늘날의 우리의 기도는 중보기도자라 할수 없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습니다. - 주님 용서하소서 !
다시 언급하기를 모세의 기도는 출애굽한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므로 취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가치있는 백성이며 언약된 백성이니 제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셋째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중보와 오늘날 중보기도자의 기도 내용은
너무나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중보기도자의 기도가 바로되어 져야 할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중보기도가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성취가 일어나도록 초점을 맞추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의 중보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기도의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중보기도자의 기도 내용도 하나님의 목적과 성취를 이루어가도록 중보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중보기도자의 영적 자세

중보기도자의 영적 자세가 바르지 못하면 반드시 그 기도는 수정해야 합니다. 먼저 중보기도자가 죄사함을 받고 남은 백 성도 죄사함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보기도자의 자세가 될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중보기도 자는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자식을 가슴에 앉고 기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죄부터 회개하는 것이 중요 하겠습니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와 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 바울은 돌이켜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음으로 주앞에 이르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깊이 받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중보기도 자는 죄사함을 받은자로 서야 새롭게 되는 날이 주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온전하게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토록 중보기도자에게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죄가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 성령의 인도를 받는 중보기도 자는 악한 길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에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렘23:22)

눈물의 종 예레미야는 이렇게 서술 합니다.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 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하였으니 오늘날 중보기도자 역시 마음에 새겨야 문제라 생각합니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는 것이므로 죄 없이 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겔18:30)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 할지라 그러므로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선지자는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을 받기 때문에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라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돌이켜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악이 삶에 걸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남김없이 죄를 온전히 버리고 악이 삶에 걸림이 되지 않도록 해야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는 (창3:6)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죄로 사망에 이른 죄가 심판받을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쉽게 듣고 쉽게 버리는 자가 되면 그자체로 사망적 죄가 됩니다.

때문에 반드시 무시로 말씀을 버린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회개하지 아니하면 재앙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은 (계16:9)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는 불심판의 재앙입니다. 이런 재앙을 받지 않으려면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진리의 사람을 미혹하여 사망으로 던져버린 간교한 뱀으로서 곧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장본인입니다.
결국 말씀을 쉽게 듣고 쉽게 버리는 것은 광명한 천사에게 속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 지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자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마13:5)그러므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하였으니 오늘날 중보기도자는 죄 없이 함을 받는 자가 먼저 되어야 중보기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보기도자가 하나님을 떠나 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 어찌 회개를 할 수 있겠습니까 ?

이제라도 하나님을 떠나 산 죄가 얼마나 무섭고 더러우며 각자 내 인생에 치명적 손상을 입히는 것인지를 알고 먹는 것 보는 것 탐하는 것에서 나와야 참된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중보기도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말하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는 중보기도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자신을 살펴서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온전한 회개가 일어나도록 그 인자하심을 오래 참으시고 은혜를 배푸셨으나 믿는자가 알지 못한채 회개 할 줄 모르고 의식없는 기도자가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지한 자가 되기 때문에 중보기도자가 되기를 원하는자는 먼저 자신의 죄 없이 함을 받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러므로 (렘애3:41)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중보기도자는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온전히 주께로 돌아가 마음과 손을 아울러 들때에 하나님은 기꺼이 용서하시고 생명을 허락 하실 것이므로 감사함으로 믿음을 드리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자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더욱 중보기도자의 회개는 필수입니다. 잠시 나의 죄로 인하여 나를 징계하셨으나 회개 함으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중보기도자는 체득헤야 합니다.(호6:1)

그러므로 회개에 함당한 열매를 맺으며 사역을 감당 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마3:8)
 
(3)사형에 해단하는 죄란 ?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 그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바울은 (롬1;28-32)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안에 자리잡은 것이 먹는 것 보는 것 탐하는 선악나무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을 다 버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의식없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여도 자기에게 유익이 없으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 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라고 하십니다
(느9:2) 성령께서도 같은 의미로 자신 속에 은밀한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심판하는 날이 있을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롬2:16)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모든 은밀한 죄까지 모두 들어내어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무엇보다 중보기도자는 마음이 유리바다같은 마음이 되도록 갈고 닦는 일에 힘써야 함으로 모든 사욕과 탐심은 버려 중보기도자로 부끄럽지 않도록 자신을 바르게 해야 할것입니다.

또 중보기도자는 비교할 수 없는 경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는 중보기도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능력이 있다하는 자가 마음이 부패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경건까지 자기의 유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 어머니중보기도자는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가 한사람도 없도록 말씀에 주의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잠16:20)

또 중보기도자는 행함이 앞서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바리새인과 같다 할것입니다.
그러므로(약2:17-20)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로 죽은 것이라 믿음과 행함이 동반되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록 스스로의 행함을 살피고 경건에 유익하여 유업을 얻는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가 무엇인가 나열해 봅니다.
중보기도자로 부름받은 자가 아래의 죄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롬1:28-32)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런 것이 자신속에 하나라도 있다면 반드시 버려야 중보기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진리에 이르지 못한 것 또한 죄입니다.(딤후3:1-9)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은 1)자기를 사랑하며, 2)돈을 사랑하며, 3)자긍하며, 4)교만하며, 5)훼방하며, 6)부모를 거역하며, 7)감사치 아니하며, 8)거룩하지 아니하며, 9)무정하며, 10)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11)참소하며, 12)절제하지 못하며, 13)사나우며, 14)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15)배반하며, 16)팔며, 17)조급하며, 18)자고하며, 19)쾌락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20)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저희,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수 없느니라 얀네와 얍므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이 된 것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진리에 서지 못하면 위의 20가지의 죄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는 진리에 서도록 자신을 이 같은 죄에서 돌아서는 자가 되어야 사명을 감당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8:31-32)예수께서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대로 진리를 알기에 부족함 없는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참 주의 제자가 된다 하십니다.

하니 위의 20가지의 속성을 가진 자들이 주변에 있거든 피하고 자신을 겸비하여 회개의 사람으로 낮아지는 자리에 내려오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중보기도자가 살고 지도를 받는자가 살것입니다.

 
4)중보기도자는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

중보기도자가 삼가 말씀에 주의하지 아니하면 좋은 것을 얻을수 없습니다. (잠16:20) 좋은 것은 말씀이므로 말씀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패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말씀에 주의하지 못했다면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잠13:13)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 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하십니다.

사람에게 사망이 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였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시107;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쇄시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하시기 때문에 중보기도자는 이제라도 삼가 말씀에 순종하여 사망의 그늘에서 나와야 하며 곤고와 쇄사슬에 매이는 일이 없도록 간교한 사단의 줄을 끊어 내는 결연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연한 마음이 없이는 중보기도자로 설수 없습니다.
중보기도자는 맏은 일에 충성되어야 합니다.
하여 맏은자가 구할 것은 오직 충성뿐입니다.(고전4:2)

중보기도자가 충성을 앞세우지 못하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모세는 집 맡은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예수는 집 맡은 아들로 충성 했습니다. 곧 충성을 바탕으로 하지 아니한 자는 중보기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여 맡은 자는 오직 충성뿐입니다.(딛2:10)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중보기도자의 충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교훈하심이 빛이 난다면 그보다 더 큰 주의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맡은 자가 충성을 하려면 때로는 고난도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 하지 않고 충성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자신의 마음에 자유로운 자로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중보기도자의 충성은 공력이 불타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 자가 하는 일은 사명으로 하는 일입니다.

(고전3:12~15)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이제라도 맡은 직분에 충성하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본래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생들은 하나님이 원하는대로 공경하지 못하고 자기의 유익한대로 믿고 육으로 넘어진자들 뿐입니다. 이땅에서 누가 온전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라도 사명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공경에 부족한 것을 알았다면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진정을 다하여 공경하는자가 되면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 모든 죄를 토설하고 다시 믿음의 길을 가는 자가 이제라도 되어야 할 것입니다.(롬14:23)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한 것은 다 죄니라 하시니 믿음으로 행하지 못한 모든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는 육신의 생각으로 행한 모든 것을 용서받도록 온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자로 부름받은 자는 말씀을 묵상하며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사명을 다 할수 있는 것은 오직 삼가 말씀에 주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윗처럼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시1:1-3)

중보기도자는 진노의 날에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에 주의하는 길 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의 입술은 정결해야 합니다. 입술이 정결하려면 마음에 말씀을 가득 담아야 합니다.(마12:34-37)

하여 마음에 쌓은 대로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 자가 믿음의 길에 서서 혹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자신이 받는 죄 값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판단 받을 죄가 있다면 반드시 회개 해야 합니다.(롬2;1-8)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내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 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우리가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 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 하심과 용납하심과 같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내개 쌓는 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더라

1) 남을 판단하는 죄, 2)고집하는 죄, 3)회개치 않는 죄, 4)당을짓는 죄, 5)진리를 쫒지 않는 죄. 6)불의를 쫏는 죄는 중보기도자에게는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무시로 지은죄가 있다면 반드시 회개하고 심판받을 자라에서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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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16절 2012.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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