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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 없는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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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목자원 작성일 15-06-19 06:12 조회 2,620 댓글 0
 
 먼저 우리는 무덤이 없는 모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40년 만에 비스가 산에 올라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다.
감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그것은 므리바 사건 때문이다.
곧 므리바 사건으로 인하여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민20:10-13)

므리바의 사건은 모세가 반석을 명하지 않고 두번 친 것으로 인하여 요단강을 건너가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의 사람들의 신앙상태를 보면 모세가 단한번의 불순종으로 가나안을 버라보고 들어가자 못하였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이랴 -
모세가 비스가 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어야 했을때 모세의 심정이 어떻했을까 ?  
모세는 비스가 산에서 말씀대로 죽었다. 그런데 그후 모세의 무덤을 아는 자가 없었다.
[신34:5-6]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면 모세의 시체는 어떻게 된것인가?
그런데 모세의 시체가 사라진 후 신약시대 예수그리스도의 제자가 기록한 유다서에서 모세를 찾을 수 있다.
[유1 : 9 ]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이라고 한다 

이것은 미가엘 천사장과 마귀가 모세의 시체를 놓고 쟁변하는 장면이다.
결국 짧은 이 한 구절에서 모세의 무덤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론은 (마17:1-)에서 모세는 변화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모세는 마가엘의 손에 옴겨 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하나님은 산자요, 마귀는 죽은자 인데,
곧 산자와 죽은 자란, 각인의 신앙상태에서 매듭 지어짐을 알게 한다.

결국 산자는 미갈엘이, 죽은 자는 마귀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영이 없는 죽은자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미가엘은 하나님의 영이 있는 자를 가져 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없는 죽은 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하나님의 영이란(요6:63)

예수께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없는 모든 자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마귀의 것이기 때문에
마귀의 지배를 받아 무덤으로 가는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모세의 시체를 놓고 천사장 미가엘과 마귀가 쟁변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변화산에서 보였다는 것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어 산자가 되었기에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귀는 모세를 자기것이라 한것과
미가엘 천사장은 모세가 잠자는 것이지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그 모세는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있었다는 것은 부활하였다는 것이다.
부활은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야 부활한다.

예수께서도 죽어 무덤에 들어가셨으나 하나님께서 부활의 주님을 삼으셨다.
함과 같이 모세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법을 받을 때에 그 얼굴이 빛난 광체였다.
이것은 모세의 변화의 모습이다. 이 모습을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보이셨다.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변화산에서 제자들에게 보였다.
예수께서 변화된 모세와 엘리야를 제자들에게 보이신 이유가 무엇인가?
제자들도 이 영광에 참여하라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하다면 오늘날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도 참여 할수 있는 믿음이 되라는 것이다.
결국 모세와 엘리야의 변화는 산 자의 모습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에 부합된 믿음이 되어야 한다.
또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모세가 죽어 그 시체를 마귀에게 내 주어도 마귀는 참소할 수 없다.
결국 마귀가 참소할 수 있는 것은 죄인 뿐이다. 결국 죽은 자만이 마귀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시체를 놓고 마귀가 미가엘과 쟁론한 것은 자기것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가엘이 모세를 살펴 볼때에 마귀것이 없으니 가져갈 수 없다는 쟁론인 것이다. 그러나 마귀는 모세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있음으로 쟁변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수십년을 가는 동안 원망이 그치지 아니하므로 긍휼함의 원통함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는 안타까움이다. 결국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비중이 하나님께 있음으로 미가엘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은 깊이 자기신앙 정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생 끝자라락에서 모세같이 쟁론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아는 모세는 위대한 신앙가이다.
그런 모세가 미가엘과 마귀의 쟁론을 받았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끝날을 위하여 반드시 자기정검이 불가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긴자 모세와 엘리야를 거울 삼고 제자들에게 교훈하시는 주의 마음을 이제는 읽어야 한다. 다시 말하여 이 모습을 보면서 나라는 존재 가치를 마귀와 미가엘이 조사하여 가져가려 할때에 미가엘의 손에 들어갈수 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변화산에서 엘리야와 함께 나타난 모세를 보고 모세의 부활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주의 십자가는 모세의 길을 선택 하신 것이다
(마17:1-3) 우리는 변화산에 선 모세와 엘리야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부활과 변화는 예수만이 공개할 수 있는 진리이다.
 이로서 죽은 자는 가나안에 들어 갈수 없고,
오직 산자만이 들어가는 가나안이다.
하나님이 모세와의 약속은 가나안으로 이주시켜 그곳에서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에녹과 엘리야에 대해 육체적 죽음을 보지 않게 한 것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왜 모세와 예수는 죽어서 부활를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
이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가는 길이 두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경작하신 제일의 근본적 산자의 길이다.
즉 부활의 길, 죽은 자가 가는 길이다.
그러나 변화의 길 산자가 가는 길이다,
미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 두 길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약속의 증거가 모세를 부활시키므로 광야에서 죽은 자들에게 소망이 되게 하신 것이다.
결국 죽은 자가 가는 길은 없다. 오직 부활, 길뿐이다. 다시 살아서 가는 길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골1:15-1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
때가 되므로 예수께서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했다.
하여 그것을 믿는 자는 값없이 구원의 길을 가는데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부활의 길이냐 변화의 ,길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대속의 죽음을 선택하셨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죄의 값을 나귀에게 지불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은 죽어도 그 시체는 마귀가 참소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을 믿는 자는 죽은 자가 아니다.
산 자 예수에게 접붙인 바 된  산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이 죽어도 그 시체를 마귀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가 되면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산 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본래 생명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다. 
오직 산자가 가는 나라이다. 
모세가 이나라를 한번의 범죄때문에 멀리서 바라만 보는 하늘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모세는 죽어서 영혼이 가나안(하늘나라)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모세는 다시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담이래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죄값을 치르고 죽어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결국 죄인들에게 먼저 부활하는 표적을 보여주셨던 것이다.
이 표적을 본 자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가야 한다.
생명의 나라는 죽음이라는 단어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아침을 보는 자가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지혜가 된다.
오직 다시  산자가 되도록 깨어야 한다,
영원히 사는 존재로서 변화의 날을 꿈 꾸며 깨어나는 새 나라의 요람에 미소지을 짓고 가는 길이 즐겁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부활이 있기에 예수의 부활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혹이 말하기를 보편적으로 죽어서 영혼이 천당간다는 수준에 머믈면 지극히 어린 아이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의 현대 교회에서 말하는 죽어서 영혼이 천국과 지옥에 이른다는 가르침은 시정할 필요가 있다.
 오직 부활을 통한 영생이 있고 그것을 소망삼고 사는 자가 이 땅에서 모든 욕망을 버린자가 된다.
세상 욕망을 버리누 자는 물욕도, 명예욕도, 권세욕도 사라져버린 자이다.
다시 말하여 죽어서 영혼이 천당 간다고 하는 것은
이 땅위에서 윤리 도덕적 차원에서 그 보상을 내세에서 받으려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이후 모든 성경의 핵심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는
인내할 것이며 사랑할 것과 모든 윤리, 도덕적 율법적 죄의 욕망에서 해방됐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자는 오직 예수의 부활을 증거해야만 한다.
오직 죄와 불신앙을 깨우쳐 부활의 믿음에 이르도록  혼신을 다하여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교리와 신학의 누룩을 버리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한 눈으로 성경을 다시 정독해야 한다.
곧 청결한 마음으로 피상적 종교의 자리에서 벗어나
부활의 소망을 안고 자유한 자가 되어 가나안을 향하여 가는자가 되어야 한다.
 모세가 비스가산 정상에 올라 저 멀리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죽어가듯 우리도 모세의 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며 죽어가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까닭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어 죄와 사망이 없는 생명의 나라에 들어 가기를 힘쓰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글쓴이 / 한국어머니중보기도회 회장 정사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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